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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人

경천애인 종합컨설팅 / 안영희 대표

베트남 최고의 기업 전문 종합 컨설팅 매니지먼트
목적의식을 가지고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라.
맨몸으로 뛰어든 베트남에서 새 희망을 만들다

요즘 베트남에 대한 한국 내 열풍이 뜨겁다. 베트남에 진출하고자 하는 한국기업에게 훌륭한 길라잡이가 될 수 있는 한 기업인을 만났다. 이곳 베트남에 처음 올 당시 달랑 여비 정도의 쌈짓 돈만 지니고 왔다는 기업 종합 컨설팅 전문 기업 경천애인의 안영희 대표는 “말 그대로 ‘맨몸’으로 왔습니다.”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때 그 시절을 일컬어 ‘배수진(背水陣)’이었다고 말하는 안 대표는 밑바닥부터 올라가겠다는 의기 외에도 크리스찬으로서 지닌 나름의 신앙적 이유도 있었다는 후문이다. 이유는 분명했다. 그저 젊은 것 하나가 자신의 전부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넘어졌으면 또 일어나 다시 하면 된다

시작은 영 좋지 못했다. 베트남에 온 지 3일 만에 기껏 가져온 1,600달러 중 900달러와, 휴대전화를 비롯해서 그간 쌓아온 인맥들의 연락처들이 담긴 노트북까지 한국에서 가져온 대부분의 것들을 도둑맞은 것이다. 다른 것은 괜찮지만 그 동안 자신에게 거의 절대적 가치로 여겨온 그 많던 인적 네트워크까지도 모조리 날리게 된 안영희 대표는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이내 상심으로 가득 찼던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마저도 그간 쥐고 있던 다른 것들에 의지하던 과거를 버리고 당신만 믿고 의지하라는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니 현실이 달리 해석되어 보였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경천애인 종합컨설팅의 한 서비스인 헤드헌팅파트도 운영하고 있는 안영희 대표이기에, 오늘날 우리 청년들을 바라보는 것이 참 안타깝기만 하다. “자신을 쏟아 붓지 않고 대충해서 될 일은 절대 없습니다. 그 바닥에서 버티고 버텨 수십번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잡고 오기로 버텨내고 이겨내었을 때 어느덧 전문가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최선을 다했는데도 오히려 최악의 결과를 맞이했을 때, 비오는 날 도로 위에 대자로 누워 지나가던 차가 자신을 치고 가길 비를 맞으며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한참 울다보니 여전히 죽지 않았고 결국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저는 이런 면에서 오기(傲氣)란 다섯번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기(五起)라고 이해합니다”

안영희 대표는 자신에게도 물론 공부는 ‘끝이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로서는 당연한 이치다. 하나를 알면 모르는 것이 두 개가 나오고, 그 둘을 알게 되면 모르는 것이 다섯개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을 포기하지 말고 오히려  ‘즐겨라’는 것이 베트남 진출 기업을 위한 종합 컨설팅 전문 매니지먼트 기업 경천애인을 이끄는 안영희 대표의 생각이다. 내 나라도 아니고 외국 타문화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필요한 생각인 듯 하다. 거기에 공부해서 남주자!’는 그의 생각도 안 대표가 살아온 삶을 조금 더 이해 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경천애인이라는 스스로 제 삶의 철학을 회사명으로 붙이는 것은 많이 부담스러웠지만, 이를 통해 나름대로 자신의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더욱 정직하게, 소신 있게 노력하자고 되새기고 싶다는 안 대표의 바람처럼, 바로 이렇게 힘써 궂은 길을 자처해 왔기에 경천애인은, 그리고 안영희 대표는 항시 당당하다.

경천애인의 사명 자체도 안 대표의 말에 따르면 상당히 ‘성경적인 이름’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홍익인간, 경천애인에서 안 대표는 이를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성경의 십계명 개념에서 설명하였다. 그 역시 처음부터 이것을 베트남에서 기업명으로 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시작되며 자신의 기업철학으로 삼을 기회가 닿았었던 것 같다며 안영희 대표는 환하게 웃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 그리고 고객들 앞에 더욱 떳떳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베트남 1위 기업 종합 컨설팅 전문 매니지먼트 경천애인, 그리고 이를 이끄는 안영희 대표는 바로 이 ‘당당함’이 경천애인의 오늘을 있게 한 최고의 원동력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사명에 경천애인(敬天愛人)의 이름을 붙인 만큼, 저도 회사도 이치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맨몸으로 뛰어든 베트남에서 인생을 다시 쓰다

안영희 대표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의 인생 여정은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사법고시에 도전하던 중 부친이 다소 이른 나이에 암투병중 돌아가시며 더 이상 공부를 할 수 없게 되었고, 한국에서 외삼촌이 운영하시던 모 건설이라는 중견 건설업체에서 재무관리, 인사관리, 사업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소화하여 결국 대표이사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그 과정이 말처럼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그가 친인척이라는 사실만으로 직원들로부터 많은 시기와 질투를 받았고 심지어 자신을 괴롭히던 사수로 인해 일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여 업무를 스스로 고시공부하듯 독학으로 공부하였다고 한다. 처음 거의 두 달을 새벽 5시에 집을 나와 밤 1시에 퇴근하기 까지 남 모르게 회사 내 모든 서류들을 보며 시스템을 이해하였다고 하니 그 열정이 대단했다. 그러다가2005년도부터 점점 흐려진 한국 건설 경기를 보며 업종 전환을 절실하게 고민했다.

그와 베트남과의 인연은 바로 그러던 차에 발생했다. 2008년 당시 학업양면으로 다니던 대학원에서 해외 산업 시찰 겸 학술교류 대회참여의 기회로 생애 처음으로  베트남에 갈 수 있게 되었던 것. 그리고 비로소 그곳에서 안영희 대표는 그때 당시만 해도 그에겐 그저 월남전의 현장으로 알고 있던 베트남 땅에서 그의 가슴을 꿈틀거리게 하는 꿈을 만났. 그러다가 결심하여 젊은 CEO의 삶을 버리고 36세 되던 2010 6월 말에 그저 맨손으로 도착한 베트남 하노이가, 그저 예상했던 1년 정도를 넘어 현재 거의 10년 가까이 사업하며 그 땅에서 아름다운 베트남인 처를 만나 행복하게  살게 될 줄은 그 누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한편, 목표를 일정 부분 이룬 지금에 와서는 처음부터 방향과 목표설정을 스스로 너무 길게 본 것은 아닌지 아쉽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굳이 택한 에움길에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웠다며 미소 짓는 안영희 대표이다.

아는 사람 한명 없고 베트남말 하나 알지 못하던 안 대표가 베트남에 와서 한 첫 일은 어느 한국계 헤드헌팅 회사의 일이었다. 한국인에게는 월급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겨우 400불 남짓한 급여를 받던 것은 그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그 회사 사장이 해외에서 아주 저질스런 행동들을 일삼는 것에 같은 한국인으로서 창피했고 그곳의 참담한 상황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던 안영희 대표는 딱 2달 여 만에 일을 그만두었다. 그러고 나서도 그 사장은 그가 직원들을 빼내어 회사를 차렸다고 모함하기도 하였단다. 실제로 안 대표가 창업한 시점은 1년이 거의 다 되어가던 시점이었고, 퇴사 후 봉사활동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던 학생을 직원으로 채용하였기에 전혀 관련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사이에도 많은 일들이 그가 장미빛 인생을 꿈꾸도록 가만 두지 않았다. 베트남에 들어갈 때 계획한 멋진 몇몇의 사업 아이템 들이 현실과 맞지 않아 의욕을 잃고 밤새 울기도 많이 했다. 전에 그가 잠시 일하였던 헤드헌팅 회사 사장의 행태를 알게 된 몇 몇 회사에서 그가 대신 헤드헌팅 업무를 의뢰해 오면서였는데, 안 대표는 많이 고민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전 회사의 잘못된 업무행태를 보고 헤드헌팅 서비스에 색안경을 쓰고 보았던 것이었다.

베트남에 아는 사람도 없이 아무것도 지닌 것 없이 맨 몸으로 타국에 나왔지만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만나 진실되게 이야기하는 일이었으며, 그가 베트남 문화와 사람들을 접하면서 자신처럼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보일 수 있을 거라며 도전했다는 안영희 대표. 어두울 수록 빛은 더 강하다고 하듯이 그렇게 조촐하게 시작했던 회사가 오늘의 기업 종합 컨설팅 전문 기업, 경천애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베트남 최고의 기업 전문 종합 컨설팅 매니지먼트를 꿈꾸며

법인설립을 시작으로 비자, 노동허가서 등의 기초업무, 구인 구직, 노무관리 등의 HR 업무, 여기에 회계세무상담, 경영관리 등 회사가 폐업할 때까지 거의 모든  매니지먼트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대한 컨설팅 업무를 다룬다는 기업 종합 컨설팅 전문 기업 경천애인은,그야말로 기업을 위한 베트남 최고의 전문 ‘매니지먼트’ 기업이다. 따라서 경천애인의 시스템은 복잡할 듯하면서도 상당히 심플하다.

안영희 대표의 말에 따르면, 고객인 회사의 경영과 관리는 회원사가 직접 운영하는 가운데 회계 또는 노무와 같은 전문분야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회원사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의 노무사나 회계사 등 전문가를 고용하지 않고도 안영희 대표의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손쉽게 해결한다, 는 것을 취지로 구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처리해 나가고 프로세싱을 지휘 및 관리하는 안 대표의 손길은 실제로는  매우 분주했다.

안영희 대표의 말에 따르면, 컨설팅 회사의 진짜 역량은 누가 뭐래도 설립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설립 전에 법인설립의 취지대로 기획안을 잘 짜서 설립 이후 그 기획안을 계획대로 잘 이끌어 나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이다. 본인 경험상 베트남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안되는 것도 없고 되는 것도 없다고 한다. 남들이 안된다는 보는 그 부분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 경천애인의 실력이다.

실제로 그가 베트남 전역에 그가 서비스 지원했다는 회원사들을 보면 찬란하다. 베트남에 진출한 삼성을 비롯한대기업 부터 작은 회사들까지  그의 손이 거쳐간 회사가 거의 800 여개에 육박한다. 그만큼 많은 컨설팅 업무를 하였다면 어떤 문제이든  척하면 착하고 해결 방안이 나올 것 같은데, 안 대표는 교만하여 한번 더 확인을 안하면 늘 실수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확신하더라도 돌다리도 한 번 더 두드리고 가야 합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그의 성실과 꼼꼼함이 엿보인다.  

목표가 자신을 이끈다

혼자 미지의 땅에 그것도 무모하게도 맨몸으로 들어와 본인이 한국어를 가르치던 달랑 두 명의 학생과 함께 시작한 일이 오늘날 베트남 현지 상근 직원 30명에 한국인 직원 3명을 둔 사업으로 발전하기까지 안영희 대표에게도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러나 그의 꿈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나아가 그는 자신이 처음 베트남땅에 이르렀을 때 꾸었던 경천애인(敬天愛人)’의 비젼을 이 사회에서 나누고 싶은 꿈이 안영희 대표에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그의 꿈을 이루어가는 두번째 단계로 얼마전에 작은 의료법인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을 위하여 좋은 일들 많이 생각하고 있는데 이제서야 겨우 발걸음을 뗀 상황입니다. 한국의 좋은 의사 선생님들이 저의 꿈을 함께 실현 하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안 대표의 그 다음 목표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학교설립이라고 말한다. 처음부터 바르게 잘 가르치면 베트남의 미래는 정말 밝을 것이라며, 그의 말 표현대로 순흥 안씨의 혈통으로 훈장질(?) 하던 조상들의 유전적 성품때문인지 교육사업에  대한 소신도 보였다.  

행운도 받을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머물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 기회의 터전 베트남에 진출하고픈 숱한 우리 기업가들과 한인들에게, 베트남 진출 선배로서 기업 전문 종합 컨설팅 매니지먼트 경천애인의 안영희 대표가 강조하는 바는 오직 하나다. 바로 ‘왜 해야 하는가? 라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와야 한다는 것.

이른바 ‘성공’을 거두기 위한 조건은 한국이나 베트남이나 절대 다르지 않다는 안영희 대표는,뭘 해야 할지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막연하게 오시는 분들에게는 사실 저희로서도 도와드리기 어렵습니다. 큰 돈과 노력을 하지 않고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그 일을 하고 있겠죠. 또 아무리 좋은 사업아이템을 제시하여 드린다 해도 본인이 그 일을 감당할 만한 능력과 의지가 없으면 오히려 수업료만 날립니다. 본인이 한국에서 하던 일을 세배이상 더 열심히 한다면 분명 한국에서도 성공하실 수 있습니다. 베트남을 만만하게 여기고 여기서는 대충의 노력만으로 잘 살 수 있다고 하면 정말 오산입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이곳은 마치 호수에서 떠다니는 오리처럼 물 밑에서 정말 바쁘게 물갈퀴 질을 해야 그나마 살 수 있습니다’. 남을 보지 말고 차라리 본인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그는 말한다.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지나는지 어느 날 거울에 갑자기 백발 성성한 노인인 자신의 모습이 보일까봐 겁난다는 안대표. 열심히 일하다 보니까 어느덧 마흔이 훨씬 넘어 버려 결혼을 포기하자는 생각도 했으나, 고맙게도 지금의 아내가 나타나 결혼도 하고  행복 하다며 웃었다. 남들보다 결혼도 많이 늦었지만 자기를 사랑해 주는 아내와 건강한 아들에, 현재는 태중에 올해 10월에 출산 예정인 예쁜 딸을 기다리는 안 대표의 행복한 모습이 좋아 보였다.

맨몸으로 도전한 기회의 땅 베트남, 그곳에서 그가 성공을 일굴 수 있었던 것은, 너무 뻔하지만, 지치지 않는 도전 정신과 마르지 않는 향학심 덕분이었다. 이제는 행복만 남은 지금, 안영희 대표의 그 꿈, 베트남을 넘어 전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취재 : 김시동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