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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믿소사(Mitsosa) 변효삼 회장]타임스퀘어 상가를 점령한 맨해튼의 코리안 비즈니스맨

좌절은 깊지 않았고, 재기는 빨랐으며, 꿈은 영원하다

 

세상에는 다시 일어선 사람보다 실패와 포기로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이 더 많다. 거짓말처럼 재기에 성공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변효삼 믿소사(Mitsosa) 회장은 과거에 누렸던 영광보다 현재의 삶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희망을 기대하며 살고 있다. 성공의 단맛보다는 실패의 쓴맛을 동시에 느꼈던 변 회장을 통해 불굴의 의지가 젊은 청년들에게 왜 중요한지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필요한 사람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파는 진짜 장사시작

믿소사(Mitsosa)는 뉴욕 맨해튼 내 3곳에 위치한 가방 판매점이다. 한국어로 믿소사라고 부르는 이 매장 브랜드는 믿음, 소망, 사랑의 앞 글자를 하나씩 따서 만든 이름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한인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인터넷쇼핑몰 아마존의 영향을 안 받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저는 불만이 없습니다. 꾸준히 공부하면서 즐겁게 살고 있기 때문이죠. 남들보다 더 크게 성공도 해보고, 좌절을 해 본 덕분입니다. 과거를 생각해보면 저는 참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변 회장은 1968년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 1세다. 그는 뉴저지한인경제인협회장, 세계한인무역협회 뉴저지주 무역촉진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해외 한인사회에 힘을 보탰다.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그는 사법고시 공부에 돌입했지만 고시가 자신의 길이 아님을 알고 과감하게 접었다.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한 박사에게 진로상담을 하던 중 경영학을 배우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후 경영학 석사 과정을 쉽게 마치고 경영에 남다른 재주가 있다는 것을 예감했다. 박사는 영민한 청년 변 회장에게 미국으로 가 박사 학위를 받으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그는 곧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에 도착한 변 회장은 뉴욕으로 갔을 당시 우연찮게 가발을 판매하려는 한국인을 만나게 됐다. 영어를 제법 유창하게 하는 변 회장에게 가발 판매상은 자신의 일을 도와달라며 많은 양의 가발을 보여주었다. “이것을 팔아 달라부탁하는 그를 지나칠 수 없었던 변 회장은 고민 한 번 해보지 않고 가발 24개를 그에게 받아갔다.

지나가는 길에 미용실을 발견한 변 회장은 그 안으로 불쑥 들어가 자신이 가져 온 질 좋은 이탈리아제 가발을 업소주인에게 내보이며 판매했다. 질감을 만져본 주인은 흡족해 하며 개당 15달러에 24개 가발을 전부 구매했다. 그 이후로 한동안 변 회장은 가발 샘플을 들고 미국 전역을 다니며 하루 최대 2000개 물량의 가발을 팔러 다녔다. 그러나 변 회장은 곧 그와 파트너십을 접고, 보스톤으로 오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또 우연찮게 동업자를 만나게 됐다. 그 동업자는 현재 미국을 대표하는 캐주얼 스포츠 브랜드 스케쳐스의 창업주 로버트 그린버그다. 그를 통해 변 회장은 단순한 장사를 떠나 본격적으로 경영과 사업에 눈 뜨기 시작했고, 그는 당시 가발을 백화점에 입점 시켜 판매하는 성과를 보였다. 그러나 한국 업체들이 들어오면서 그는 가발사업을 접기로 하고 대신 시계에 눈을 돌렸다.

 

시련과 좌절 끝에 맛 본 진정한 행복

미국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인 뉴욕의 타임스퀘어로 향한 변 회장은 그곳에서 시계 매장을 오픈했다. 그 당시 그가 팔았던 시계는 올림포스(Olypos), 한독, 삼도에서 만든 시계였다. 사측 관계자가 그의 매장으로 와 시계를 팔아 달라 부탁하기 시작했다. 그 역시 판매에 성공했다. 이후 현재 LG의 전신인 금성사에서도 그에게 시계 수만개를 팔아 달라 부탁했다. 시계는 해당 기업에서 백화점에 팔려다가 판매되지 못한 물건들이었다. 재고가 상당했다. 변 회장은 그 시계도 모두 팔 수 있었다.

1976년 당시에는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가 열리는 날, 맨해튼 바다에는 해군 선박들이 정박하기 시작했다. 젊은 해군들을 노린 그는 쇼윈도에 150달러짜리 시계를 49달러에 판다고 써 붙였다. 매장 안은 삽시간에 해군 군복을 입은 군인들로 바글바글해 그들이 줄을 서야 할 정도였다. 석 달 안에 수만개를 팔아치우면서 맨해튼의 유명 한인이 됐다.

제가 시계를 휩쓸어버린다고 시내에 소문이 크게 났을 정도였죠. 반지 시계도 제가 디자인하고 판매했는데 그것도 1년 동안 250만개를 팔았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맨해튼에 있는 빌딩도 사고, 그야말로 부를 축적하고 있었죠.”

변 회장은 스스로 운 좋은 사나이로 부르지만 운만 따라줬다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 했을 것이다. 행운만이 아니라 실제 어떠한 고객에게 어떤 가격과 전략으로 어떤 상황에서 물건을 팔아야 잘 팔리는지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업이 항상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미국 플레이보이 브랜드를 활용해 시계를 팔아보려다 고객들에게 외면당했다. 설상가상으로 가정문제로 인해 경제적으로 파산 상황에 처해지게 되기도 했다. 갖고 있는 재산을 팔아 은행 빚을 갚는데 썼고, 매장을 정리하며 모든 걸 내려놓는 순간이 왔다. 당시 대학을 입학하는 쌍둥이 아들을 두고 있던 그는 아들들을 각각 맨해튼에서 떨어진 다트머스대학과 펜실베이니아대학으로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내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변 회장에게 다가온 구원의 손길은 대학 선배였던 한인교회 목사였다. 목사는 그에게 34일 일정으로 기도원에서 지내보라 권유했고, 변 회장은 그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 곳에서 변 회장은 서서히 구원받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고, 서서히 긍정적이고, 당당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변 회장이 살던 아파트에 한 남자가 두 개의 방 중 하나를 자신과 나눠 쓰자고 부탁해왔다. 그는 가톨릭 신부였다. 신부와 한 방을 쓰면서 함께 여행도 다녔다. 이후 투철한 신앙심과 더불어 비즈니스 욕구가 더욱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평생 학습과 도전이 사람을 젊게 만든다는 것을 배웠다. 아이비리그 대학을 진학하고자 미국으로 온 아내가 생계를 위해 가방을 팔며 변 회장으로부터 세일즈 비법을 전수받게 되면서 합심했다. 그 매장이 바로 지금의 믿소사다. 매장은 맨해튼에서 오픈 4년 만에 6개로 늘었고, 현재도 맨해튼에서 예쁘고 고급스런 여행용 가방을 구매하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탄소섬유 소재의 여행용 가방을 최초로 제작·판매를 하기도 했다. 단순히 판매에만 집중하는 세일즈맨이 아닌 직접 개발·제작에도 뛰어들면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변 회장은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면서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정진하고 있다. 현재 4차산업혁명 등에도 큰 관심을 보이면서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 4차산업혁명 등으로 인해 많은 부분에서 어마어마한 발달이 이뤄질 겁니다. 제가 계속 배워야 젊은 사람들을 따라갈 수도 있을 테죠. 저는 죽을 때까지 공부할겁니다. 사람은 좋은 습관을 가지면서 강해질 수 있어요. 자신이 닮고 싶은 사람을 멘토 삼아 좋은 습관을 가진다면 누구나 발전하면서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취재 : 이성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