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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人

[NWC(National Waste Clean Inc) 안광선 회장 ]까다로운 미국 세탁·폐기물 산업계 마이더스의 손

거침없이, 두려움 없이 ‘라이센스’ 취득을 목표로 전진하라

 

세탁물과 폐기물, 이 두 단어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꺼려한다는 것이다. 방치하면 사람에게 해롭다는 점도 똑같다. 그래서 누군가는 반드시 치워야 한다. 마치 진흙 속에서 새하얀 진주를 찾듯이 세탁물과 폐기물이 자신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았던 National Waste Clean Inc(이하 NWC) 안광선 회장을 만나 미국에서의 삶과 성공에 관한 히스토리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마피아도 두렵지 않았던 한국인 청년, 폐기물에서 돈을 보다.

미국 뉴저지 사우스필드에 위치한 NWC1993년 설립된 세탁업폐기물 서비스 업체로, 미국 내 세탁 관련 제품 관리와 각종 산업 폐기물을 수집해 처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일의 가장 큰 특징은 미국 환경청 등 관공서에서 인정한 Hazardous Waste LicenseSolid License를 획득해야 만이 사업이 가능하며, 특정 국가 출신이나 세력이 독점적인 형태로 운영하고 있어 폐쇄적이고 위험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거침없는 사나이 기질을 가지고 있는 안광선 회장은 이 모든 악조건을 단시간에 해결하고 만다. 현재 이 회사는 미국 뉴욕과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주 등에 위치한 5,000여 곳의 세탁 업소들과 계약을 맺어 성공적으로 세탁폐기물 수거 사업을 이끌어오고 있다.

 

안 회장은 지난 1974년에 처음 미국 땅을 밟았다. 당시 그의 수중에 있는 전 재산은 고작 200달러뿐이었고, 내세울 것이라곤 27살 밖에 안 된 젊은 나이였다. 한국 내 무역회사를 다니던 안 회장이 미국으로 온 이유는 고객의 제품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일 때문에 몇 번 미국을 오가다보니 기회가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에서 정착한 후 결혼도 하고, 세 아들도 낳고, 어머니와 여동생 등 식솔들을 다 데리고 와 정착시켰어요. 당시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아내가 장남을 임신하자 한 가족의 가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곧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기계를 다루는 기술을 배우면서 일했죠.”

 

안 회장은 미국 내에서 가장 성공한 한인으로 불리고 있다. 그는 미주한인회총연합회 사무총장, 뉴저지총연합회 이사장, 홀트아동복지회 미주 홍보대사, 미연방 공화당 선거대책자문회의 공동의장, 미주총연 사무총장, 뉴저지 한인회장, 럿거스대학교(Rutgers University) 한국학과 설립회장, 미팀스터 노조 조합장 등 요직을 맡았거나 현재도 수행하고 있다.

 

당시 안 회장이 취직했던 회사는 에디슨 플라스틱사다. 회사에서 유일한 한인 직원이었던 그는 성실과 정직을 무기로 열심히 일했고, 회사로부터 인정받으면서 3년 만에 직원 400여명의 업무를 총 관리하는 생산과장으로까지 올라서기도 했다. 당시 안 회장은 트럭기사 노동조합인 팀스타 유니온에 가입돼 있었는데, 계산능력이 좋았던 그는 팀스타 유니온 내 노조조합장을 맡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30여명 정도의 한인을 입사시키기도 했다. 그가 세탁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도 이 때다. 안 회장은 회사를 다니면서 자신이 따로 운영할 수 있는 세탁빌딩을 매입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세탁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을 뿐더러, 이탈리아인 등 특정 세력이 주름잡고 있던 터라 익명의 협박편지나 무시 등을 당하는 것은 예사였다. 그 과정에서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의 원망과 그만두자는 말을 듣기도 했다. 생각보다 일은 녹록치 않았다. 힘들기만 하고 돈이 되지 않으니 결국 안 회장은 세탁소를 꾸미는 업종으로 사업을 바꿨다. 다행히 업소 몇 개를 꾸며주면서 돈을 잘 벌었지만, 세탁업을 하는 한인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으면서 이것마저도 그만두고 말았다.

 

더 이상 세탁소를 꾸미는 일을 할 수 없었지만, 폐기물이라는 다른 기회가 자연스럽게 찾아들어왔다. 그는 평소 한인사회와의 정기모임에 자주 참석한 짐 플로리오 뉴저지 주지사에게 폐기물 수거독점 업체에 대한 횡포 등을 고발하는 것으로 자신이 더 잘 할 수 있다는 패기도 내세웠다. 어떤 것이든 마찬가지지만, 사업을 잘 이끌어나갈 때보다 사업을 막 시작할 때가 더 어려운 법이다. 폐기물과 쓰레기 처리 관련 라이센스를 취득하는 것이 숙제였다.

 

NWC 자체 브랜드와 상품개발에 성공하다

미국에서 관련 라이센스를 취득하려면 10년 정도의 기간을 버텨야 하고, 본인을 비롯한 가족들의 범죄전과도 없어야 한다. 게다가 사업주와 말단 종업원들까지도 모두 환경교육을 받아야 하며, 각종 보험 가입, 자동차와 드럼 정밀검사 등 이 밖에도 수많은 법규를 익혀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 모두 충족돼야 한다. 게다가 마침 뉴저지 주지사가 바뀌었다. 안 회장은 그 때문에 라이센스를 취득하지 못 할까 불안 해 했다.

불안 속에서 그는 자신의 장기인 성실함을 새로운 주지사에게 보여주기로 한다. 매일 아침마다 그의 사무실로 찾아가 얼굴을 내비쳤다. 이후 안 회장은 세탁소와 페인트샵, 가구점, 사진현상소 등을 점포를 대상으로 첫 드럼 수거작업을 시작하게 됐고, 뉴욕시 등 타 지역에서도 관련 라이센스를 취득하게 된다. 남들은 평생을 걸쳐도 취득하지 못할 확률이 큰 라이센스를 단 6년 만에 따버린 것이다. 현재도 NWC는 한인 세탁업소 80%, 뉴저지 세탁업계 65% 등을 점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성공비결을 두고 두려움을 갖지 말고 도전할 것미국사회에 관심을 갖고, 정부와 소통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라이센스는 본토 미국인들도 굉장히 취득하기 힘든 것이죠. 그것을 우리가 취득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어떤 나라든 정착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가 규정해놓은 시스템을 잘 따라야 하는 것인데 특히 미국으로 와 사업을 시작하고자 하는 한국 분들에게 당부 드리고 싶은 말은 미국 정부와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안 회장은 시간이 없어도 동네에서 진행하는 행사나 축제 등에 적은 금액이라도 찬조하고 있다. 그 결과, 더 많은 인맥을 쌓고 소통하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그가 지역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다보니 미국 정부 인사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낼 정도로 자신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기도 한다. 더불어 안 회장은 미국으로 막 건너온 한국 이민자들이 정착하는데 큰 도움을 주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는 한때 주유소에서 일을 하는 젊은 청년이 한국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고 청년을 자신의 회사로 취직시켜주고 싶었지만 마약을 한 전과 때문에 도움을 줄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지금도 안타까워하고 있다. 안 회장은 혹시라도 미국으로의 이민이나 사업 등을 구상하고 정착하기를 원한다면 어떤 사람이든 자신이 도움을 주겠다고 스스럼없이 밝히기도 했다.

 

최근 세탁기에 들어있는 필터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우리 자체 브랜드죠. 오하이오주에 위치한 자동차 필터 만드는 회사에 연구의뢰를 했는데 품질이 매우 좋습니다. 또한 빨래를 할 때 사용되는 제품도 우리가 자체 개발에 성공한 브랜드입니다. 미국은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용사들의 후손들을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더군요. 사람에게는 각자의 그릇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의 삶을 꿈꾸는 청년들이 낯선 땅이라는 선입견을 품고 정착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때로는 거침없이 도전해보는 정신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아직은 젊으니까요.”

취재 : 이성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