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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사업가 박상윤이 미치는 ‘선한 영향력’, 한국 문화 중국에 소개하는 문화 교류 역할 해 와 / 상윤무역유한공사 박상윤 대표 /월드옥타 상해지회 박상윤 명예회장

박상윤 대표는 ‘창업한 지 5년 만에 연 매출 400억 원을 달성한 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1인 회사로 창업해 빠르게 성공을 거둔 이야기가 저서 <선한 영향력>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 같은 수식어가 붙은 것이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박 대표는 여전히 건재했다. 잠시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다시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몇 개의 수식어가 더 생겼다는 것. 월드옥타 상해지회 명예회장으로, 두 권의 책을 출간한 저자로, ‘윤아르떼’ 갤러리 대표로 불리며 더 분주한 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언론기자연합회는 2019년 글로벌 재외동포대상 민간외교 부문상 수상자로 박 대표를 선정하고 인터뷰했다. 사업과 문화 예술, 지회 활동 등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박상윤 대표는 창업한 지 5년 만에 연 매출 400억 원을 달성한 사업가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 1인 회사로 창업해 빠르게 성공을 거둔 이야기가 저서 <선한 영향력>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 같은 수식어가 붙은 것이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박 대표는 여전히 건재했다. 잠시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다시 견실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몇 개의 수식어가 더 생겼다는 것. 월드옥타 상해지회 명예회장으로, 두 권의 책을 출간한 저자로, ‘윤아르떼갤러리 대표로 불리며 더 분주한 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언론기자연합회는 2019년 글로벌 재외동포대상 민간외교 부문상 수상자로 박 대표를 선정하고 인터뷰했다. 사업과 문화 예술, 지회 활동 등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1인 기업으로 시작해 강소 기업으로 성장, 종합상사 만들 것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박 대표는 전북대 상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SK케미칼에 입사해 폴리에스터 섬유 수출부서에서 일했다. 중국에 진출하게 된 건 주재원 발령을 받으면서다. “중국과 인연을 맺게 된 건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기 전인 90년도부터예요. 출장 차 여러 차례 오가다가 96년 회사가 중국 상해에 해외사무소를 개설하면서 사무소장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12년간 주재원으로 근무하던 박 대표는 오랜 시간 몸담던 회사를 나와 2008년 자신의 이름을 딴 무역회사 상윤무역유한공사를 설립했다. 이후 상해에 무역법인을, 강소성에 제조법인을 두고 산업용 섬유를 수출입하는 상사로 성장해 왔다. “미세 화학 물질을 포집하는 산업용 필터에 쓰이는 PPS 섬유와 같은 산업용 섬유를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섬유 수출부서에 오래 근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분야에 주력하게 되었습니다.”

산업용 섬유 외에도 방직 원료, 응용 제품, 건자재 등 제조 분야의 다양한 원자재를 수입 및 수출한다. 특정한 항목에 한정 짓지 않고 다양한 품목을 다루는 종합상사로 성장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현재 박 대표가 중국으로 수입하는 한국 제품 규모는 연간 약 600만 달러에 달한다.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해 4월 제주도에서 열린 월드옥타 제20차 세계대표자대회에서 대한무역진흥공사 사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중국 내 많은 한인 사업가들이 그렇듯 박 대표 역시 최근 몇 년간 힘든 시기를 지내왔다. “커다란 파도가 몰려오듯 여러 가지 일들이 들이쳤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출간한 6년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죠. 하지만 무사히 위기를 넘기고 다시 성장세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살아온 흔적이 얼굴에 녹아 있기 마련인데 담담하게 지난날을 회고하는 그의 표정에서 어려움을 겪은 흔적이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가 <나는 한 살이다>에 쓴 문장처럼 겉은 출렁이지만 속은 평온했기 때문일까.


 

월드옥타 상해지회, 한국 회원과 중국 회원 화합하는 지회

박 대표는 월드옥타를 통한 사회공헌 활동도 꾸준히 해왔다. 상해지회 차세대위원장과 이사장을 거쳐 제19대 회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말 임기를 막 마치고 현재 명예회장으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지회에서 활동해 온 그에게 상해지회 소개를 부탁했다. “상해지회는 한국 회원과 중국 회원 간 화합이 잘 되는 지회로 이름이 나 있습니다. 회장 선출에서도 2년씩 번갈아 선출하고 있지요. 실제 저의 후임인 20대 회장에 조선족 동포가 선출됐습니다. 중국 내에서 회원 간 가장 잘 어우러지는 지회라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회장 임기를 마친 소회에 대한 질문에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고 소회를 밝혔다. 사드 사태 사태가 한창이던 때라 지회를 이끄는 데 어려움이 따랐었기 때문이다. “관광, 식품, 미용 등 분야를 막론하고 회원사들이 큰 타격을 받다 보니 지회 역시 여러 가지로 운영이 쉽지 않았습니다. 사드 사태가 있기 전 열어왔던 한민족어르신큰잔치도 열지 못했어요. 추진하려면 했겠지만, 중국 내 분위기가 그땐 그랬습니다.”



그런 와중에 의미 있는 성과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월드옥타를 플랫폼으로 한국의 중소기업과 지회의 회원사들이 파트너십을 맺고 중국에 진출할 수 있도록 가교 구실을 했다. 이뿐만 아니라 지회 차원의 사회 공헌 활동도 꾸준히 이어왔다. 조선족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을 위한 주말학교 운영에 힘을 보탰고 한국말 낭송대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현지에 조선족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제대로 교육할 기관이 충분하지 않아요. 우리말 교육을 통해 한민족의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해주자는 의미로 관련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월례회를 열어 한국의 작가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고 해외지회와의 네트워킹에도 힘썼다. 해외 여러 지회와 업무 협약을 맺고 회원사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고 박 대표는 전했다.

 

글로 한국 독자와 소통, 갤러리 윤아르떼열고 한국 화가 작품전 열어

박 대표의 또 다른 수식어는 두 권의 책을 출간한 저자. 2013<선한 영향력>을 낸 데 이어 2014<나는 한 살이다>를 펴냈다. 특히 <선한 영향력>12000부가 발간된지 1달만에 2000부가 완판되고 3쇄까지 발행되었을 정도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SNS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기 시작한 그는 한 걸음 나아가 한국의 문화를 현지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한국의 시인, 소설가들을 초청해 현지 한인과 조선족 동포를 위한 무료강연회를 30차례 이상 열었고 독서클럽인 리더스클럽을 창립해 교민과 조선족 청년들을 대상으로 독서토론 활동을 활성화했으며 글쓰기 동아리를 운영하기도 했다. 그는 또 문학뿐 아니라 한국의 판소리, 국악, 연극으로까지 영역을 넓히며 한국의 문화를 중국 사회에 소개했다. “안도현, 김용택 시인 등 한국의 유명 작가들이 좋은 일에 동참한다며 강연에 기꺼이 참석해 주셨어요. 처음에는 객석에 한인과 조선족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콘텐츠가 다양해지면서 중국 현지인 관람객이 늘어나더군요.”


전주MBC 창사 50주년 기념 전북 작가 상해 전시회를 지원해 준 것이 계기가 돼 2015년에는 갤러리 윤아르떼를 설립해 한국 화가들의 작품전을 열기 시작했다. 작가 50여 명의 전시회를 연 것은 물론 청년 화가들을 중국으로 초청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제공, 창작 공간을 생활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갤러리가 잠시 문을 닫아야 하는 순간에도 상해한국문화원을 대관해 개인전을 열 정도로 남다른 열정을 보였던 그다. 현재 윤아르떼는 이사 준비가 한창이란다. “한 건물에 갤러리와 사무실이 공존하는 오피스 갤러리를 새롭게 준비 중입니다. 새 공간으로 자리를 옮기면 사업과 동시에 갤러리 업무를 동시에 할 수 있게 되어 한결 마음이 가벼울 것 같아요. 사업차 사무실을 방문하는 관계자들에게 한국작가의 그림도 소개할 수 있게 됐고요.”

민간 문화 예술 교류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 온 박 대표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제3회 장보고한상어워드에서 문화체육부 장관상을 받았다.

 

입사 후 매일 아침 외국어 공부해, 성실함이 기회를 만들다

대기업 입사와 고속 승진, 주재원 파견 후 해외 사업가로 성공. 박 대표가 걸어온 행적으로만 보면 탄탄대로를 지나왔다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탄탄대로를 걷기까지 절대 적지 않은 노력이 뒤따랐다는 걸 알 수 있다. 대학 졸업 후 SK케미칼에 입사해 바라왔던 상사맨의 꿈을 이룬 박 대표는 입사 후 주재원을 목표로 삼고 매일 이른 아침 회사에 나가 외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3년간 아침마다 일본어 공부를 했더니 통역이 가능한 수준이 되더군요. 일본어 공부를 마치고 92년부터는 중국어 공부에 돌입했습니다. 당시 회사에서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뽑혀 북경어학원으로 연수를 다녀온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러한 꾸준한 노력의 대가는 출중해진 외국어 실력만이 아니었다. 중국 진출을 위한 상해사무소 설립 구성원으로 박 대표가 차출된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제가 지목된 건 아니었어요. 사장님께서 아침 일찍 회사에 나와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눈여겨 보셨던 것 같아요.”

남보다 먼저 일어나 꾸준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성실함이 그에게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다. 박 대표는 말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않았다면 공부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결국 주재원 기회도 없었을 것이라고, 삶을 변화를 이끈 건 결국 일찍 일어나 꿈을 꿔 온 덕분이라고.

 

 

감사 일기 쓰며 위기 극복해

창업 5년 만에 4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성공가도에 올랐지만, 말로는 차마 다 할 수 없는 여러 위기를 겪으며 10년째 되는 해에 반 토막이 났다는 박 대표는 당시를 떠올리며 너무 힘드니까 눈물도 나오지 않더라라고 했다. 위기에 봉착한 그가 선택한 건 다름 아닌 일기. 탓을 하는 대신 감사 일기를 쓰기 시작했더니 그 자신도, 직원들도 에너지가 생기기 시작하더란다. “단 한 번도 직원들에게 힘든 속마음을 드러내 보인 적이 없어요. 타개책을 마련하라는 독촉 대신 어려울 때 떠나지 않고 회사를 지켜주는 직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글로 적었죠. 저절로 된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노력이었어요.”

그가 실천하는 감사 일기에는 삶을 철학이 반영되어 있다. 어릴 때 자신의 이름 석 자에 담긴 뜻을 알게 된 후 서로 잘 사는 세상을 위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는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만든 회사명함에 ‘For mutual welfare dream’이라는 문구를 써넣었다. “자신의 삶을 바르고 긍정적으로 운용하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밝은 낯으로 직원들을 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요.”

박 대표는 해마다 창립기념일이 되면 전 직원과 해외여행을 간다. 제주도, 발리, 앙코르와트 등 해외 여러 곳을 다니며 노고를 격려한다고. 오는 3월 기념일에는 부산과 경주, 통영 일대를 돌아볼 예정이란다. “<선한 영향력>을 쓰게 된 계기는 조카가 보내온 메일 덕분이었어요. 아프리카를 여행 중에 자신 안에서 많은 생명을 돌보는 달라 부쉬(Dollar Bush)를 보고 진정한 선한 영향력을 떠올렸다는 내용을 보고 감화를 받아 책을 쓰게 됐죠. 직원들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게 노력하는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 해요. 달라 부쉬처럼 선한 영향력으로 그들의 삶을 돌보고 싶은 것이죠. 그들 또한 그들의 가정에, 또 사회에 영향을 끼칠 테니까요.”

끝으로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사업을 꾸준히 성장시켜 나갈 생각입니다. 갤러리 역시 지금보다 더 집중할 거고요. 문화와 예술이 없었다면 건조한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기에 앞으로도 함께 해 나갈 생각입니다. 그리하여 더 나눌 거예요. 강연장과 전시 공간이 있는 문화복합공간을 만들어 예술가들과 대중 모두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언젠가 한국으로 돌아오면 예술과 시민이 만나는 교류의 장을 만들고 싶다는 박 대표. 그의 선한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기대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