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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일반

국산 차 대표 생산지, 차의 고장 하동에 가다

왕에게 진상된 고급 차밭, 전국 생산량 23%의 우리나라 첫 시배지

      

지리산, 섬진강, 재첩, 소설 <토지> 등과 함께 하동을 대표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차’다.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하동은 국내 최대 야생차 생산지다. 1200년이 넘는 오랜 세월에 걸쳐 우리 전통차를 재배하고 있는 차의 고장 하동으로 떠났다.

9월 중순에 접어든 하동 일대는 하늘이 높다. 여름의 열기가 채 가시지 않았지만 간간이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에서 가을이 느껴졌다. 경남과 전남의 경계에 위치한 하동으로 가는 길에서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섬진강이다. 폭우가 쏟아져 물이 불어난 섬진강은 넉넉한 물결이 잔잔하게 일렁였다.

하동군 화개면으로 들어서자 아직 초록을 벗지 못한 벚나무 이파리가 빼곡하게 그늘을 만들었다. 벚나무 뒤에는 지리산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늦여름 지리산을 싱그럽게 만든 초록 잎을 자세히 보니 차나무였다. 하동군 화개면 일대에 있는 산은 전체가 광활한 녹차밭이다. 농촌 마을의 집 앞마당에 작은 논과 밭이 조성돼 있는 것처럼 화개면에는 마을 곳곳에 크기가 제각각인 녹차밭이 자리하고 있다. 국내 최대 야생차 생산지다운 모습이다.

하동은 전남 보성, 제주 등과 함께 국내의 대표적인 차 생산지다. 하동의 차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처음 등장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 신라 흥덕왕 3년(828년), 당나라 사신으로 갔던 대렴공이 차 씨앗을 갖고 신라로 돌아왔다. 대렴공은 왕명을 받들어 지리산 남녘에 있는 화개동천에 차 씨앗을 심었다. 하동이 우리나라 차 시배지(始培地)로 첫발을 내디딘 순간이다.

그렇다면 왜 하동에 차를 심었을까? 하동이 차 생산지로 선택된 것은 차나무 재배에 안성맞춤인 기후 여건 때문이다. 차나무는 따뜻하고 비가 많이 오는 기후에서 잘 자란다. 연평균 기온이 13℃ 내외, 연 강수량이 1400mm 이상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기후 특성을 보이는 곳은 제주와 전남, 경남 등 국토의 최남단 일부다.

하동 화개면 일대의 녹차밭. 화개면은 국내 최대 야생차 생산지로 산 전체에 광활한 녹차밭이 조성돼 있다. ⓒC영상미디어
하동 화개면 일대의 녹차밭. 화개면은 국내 최대 야생차 생산지로 산 전체에 광활한 녹차밭이 조성돼 있다.(사진=C영상미디어)

1200년 전 하동, 우리나라 최초로 차나무 심어

하동 화개면 일대는 섬진강과 화개천이 인접해 안개가 많고 다습하다. 토양은 약산성에 수분을 적절히 머금고 있으며 자갈이 많아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토질이다. 차를 생산하는 시기인 4월 하순부터 5월 하순이면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큰 것도 장점이다. 이런 장점이 어우러진 화개계곡 입구에서 신흥마을까지 12km 구간은 하동에서도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환경적 요인을 갖춘 곳이다. 이 일대는 전국 차 생산량의 23%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차나무가 자라기 좋은 최적의 조건을 모두 갖춘 하동의 차는 왕에게 진상품으로 올릴 만큼 품질이 좋기로 정평이 났다.

조선시대에도 하동 차는 명성이 대단했다. 조선 전기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한 하연은 판서 민의생이 중국으로 여행을 떠날 때 하동 차를 선물하면서 시를 주고받았다. ‘화개골의 차가 좋다고 익히 들었는데 맑기는 양선산 차 같고 차 향기 중하기는 금옥 같다오. 이 차에 마음을 담아 노자로 보내네’라는 시를 통해 그 당시 하동 차의 우수함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까지 명목을 이어오던 하동 차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위기를 맞았다. 당시 일본에서 개량종이 한반도에 마구잡이로 유입되면서 재래종 차 재배에 적신호가 켜졌다. 일본 개량종이 차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기 시작하자 하동 사람들은 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하동에서 시작한 전통차의 명목을 유지하기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한 결과 현재는 지역 토착 품종이 잘 유지되고 있다. 하동 차의 가치가 더욱 높이 평가되고 있는 이유다.

전통차를 지키기 위한 하동의 노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동군은 지역 특산물인 야생차를 명차화해 지역 성장을 주도하는 산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화개면 일대 24필지를 ‘하동야생차산업특구’로 지정했다. 이후 하동야생차산업특구에 하동 녹차를 브랜드화하기 위한 시설을 설립했다. 하동녹차연구소, 하동차문화센터, 녹차체험관 등은 하동군이 녹차 산업을 육성하는 전초기지로 활용하고 있다.

하동군의 녹차 산업 육성 노력은 차츰 결실을 맺고 있다. 세계 최대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 ‘스타벅스’가 하동 차의 우수한 품질을 알아본 것이다. 하동군은 지난 1월 스타벅스 미국 본사와 친환경 가루녹차 판매 계약을 맺었다. 국내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제주산 녹차를 사용하고 있지만 미국 본사로 우리 녹차를 수출한 것은 하동군이 처음이다. 스타벅스는 계약을 체결한 당일 1차로 가루녹차 500kg을 미국으로 실어 갔다. 스타벅스를 통해 하동 녹차가 유럽·남미·아시아 등 전 세계 사람들이 즐기는 음료가 된 것이다.

전 세계인이 맛보는 차를 생산하는 화개면 일대가 가장 손이 바쁜 때는 어린잎을 따기 시작할 무렵인 4월 하순부터 5월 하순까지다. 하동의 차 재배 농가들은 찻잎을 수확할 시기가 되면 차 시배지에서 그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풍다제를 지낸다. 24절기 중 여섯 번째 절기인 곡우 전에 딴 햇차를 올리고 나면 차 농업이 시작된다.

하동은 전통 방식으로 차를 재배하는 만큼 차밭을 인위적으로 관리하지 않는다. 찻잎을 딸 때도 마찬가지. 보통 차나무는 층층이 비탈진 산자락에 산발적으로 분포돼 있어 찻잎을 수확하려면 사람이 손으로 일일이 따야 한다. 한 잎씩 손수 딴 찻잎은 솥에서 덖어 구수한 맛과 향을 지닌 수제 덖음차로 제다(製茶)된다.

하동의 전통 제다 방식은 5단계로 나뉜다. 첫째, 찻잎을 따고 고른다. 둘째, 뜨거운 솥에 찻잎을 넣고 빠르게 덖는다. 셋째, 찻잎이 알맞게 덖어지면 솥에서 꺼내 대자리에 놓고 둥글리듯이 비빈다. 넷째, 비빈 찻잎을 채에 넓게 펴서 건조시킨다. 다섯째, 솥에 넣고 불을 점점 줄이면서 한 번 더 덖는다. 이 같은 방식으로 다른 나라 찻잎에 비해 얇은 한국 찻잎의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찻잎 특유의 맑은 맛을 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