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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청와대 출입기자가 본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질문 기회를 얻으려면 대통령의 시선을 잡아라!
문 대통령, 회견 전 참모들 팁 건네자 “제가 알아서 잘 할게요”

       

낯설었다. 신년사를 발표한 뒤 기자회견을 주도한 문재인 대통령도 낯설었을 것이다.

지난해 8월에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 때보다 한 단계 진화했다. 당시엔 어느 정도 기자들과 안면이 있는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질문할 기자를 지명했다. 이번엔 기자들의 얼굴과 이름, 속한 언론사가 어디인지 잘 알지 못하는 문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꼽는 방식이었다. 블라인드 테스트에 가까웠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 사전에 질문과 질문자를 정하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사진=청와대)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사전에 질문과 질문자를 정하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질문자를 지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사진=청와대)

청와대가 처음 이런 방식의 기자회견을 검토했을 당시,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러 방송이 전국으로 생중계를 하는데 방송사고가 난다면 신년기자회견의 효과가 반감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의지가 강했다고 한다. 참모들이 최소한의 룰, 몇 가지 팁을 건네려 하자 “제가 알아서 잘 할게요”라고 했을 정도로.

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든 기자를 지명하고 있다.(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든 기자를 지명하고 있다.(사진=청와대)

대통령이 질문자를 즉석에서 선택하는 ‘즉문즉답’ 방식의 기자회견이 우리나라에서는 사상 최초이다 보니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회견이 끝날 때까지 쉼 없이 손을 들었으나 지명을 받지 못한 기자들은 더욱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업계 종사자‘가 아닌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틀에 짜인 딱딱한 회견보다 훨씬 재미있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좋았고 게다가 유익했다”

앞에서 ‘진화’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이 때문이다. 기자들은 국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 일하는데 회견을 지켜본 국민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좋았고 게다가 유익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질문 기회를 ‘쟁취’ 하기 위해 아침부터 신경전을 벌였다. 기자회견은 오전 10시. 기자들이 근무하는 청와대 춘추관에서 회견장인 영빈관까지 이동하는 버스가 9시에 출발했는데 회견장에서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미리 버스에 타있는 기자들이 많았다.

대통령과 가까운 앞자리에 더 많은 기회가 있을 거라는 예측은 빗나갔다. 위치에 상관없이 질문자가 선정됐고, 특정 위치에서 다수의 질문자가 집중적으로 나오기도 했다.

(사진=청와대)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라…그러나 예측은 빗나갔다

문 대통령은 오전 10시 회견장에 들어서 25분 동안 신년사를 발표한 뒤 한 시간 남짓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답했다. 질문자 지명은 문 대통령 마음이었다. 나름 눈치를 보니, 안면이 있는 기자나 100일 회견 때 질문했던 기자들은 피하려 한 것 같았다. 더 많은 기자에게 기회를 주려는 선의로 해석할 수도 있다.

미리 정해둔 것은 ‘정치·외교·안보 분야 6개’, ‘경제·민생 분야 4개’, ‘평창올림픽 포함한 사회·문화 분야 2개’라는 질문의 범주와 개수 뿐이었다. 사회를 맡은 윤영찬수석은 질의응답에 앞서 이렇게 당부했다.

“나도 눈 맞췄다고 일방적으로 질문하면 곤란합니다” 장내 웃음바다

“전례가 없었던 방식이라 대통령이 질문자를 지명하는 과정에서 일부 혼선이 있을 수 있다. 대통령이 손으로 지명하고 마지막으로 눈을 맞춘 기자에게 질문권이 주어지는데 ‘나도 눈 맞췄다’며 일방적으로 질문하면 곤란하다.” 긴장감이 돌던 장내에 웃음이 터졌다. 그 때는 그 주인공이 필자가 될지도 몰랐고.

지금부터 질문을 받겠다는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장내에 있던 기자들의 손 200여개가 번쩍 올라갔다. 묻지 않으려면 생중계를 보면 그만이고, 다른 기자가 자신이 준비한 질문을 먼저 해버리면 궁색해지기 때문이었다.

질문권을 얻기 위한 경쟁도 치열했다. 눈에 띄는 색깔의 옷을 입어 질문 기회를 얻은 한 기자는 “신의 한 수”라고 자평했다. 양손을 들거나 종이, 수첩을 흔들어 문 대통령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압권은 평창겨울올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 인형을 번쩍 들어올린 기자였다. 문 대통령은 17명의 질문이 다 끝난 뒤 “오늘 질문 기회를 못드린 분들에게는 죄송하고 다음에 기회를 드리겠다”고 말했다.


손 200개 ‘번쩍’…평창 마스코트 수호랑 ‘불쑥’ 압권

문 대통령은 회견 도중 ‘참모 찬스‘를 쓰기도 했다. 경제 성장과 관련한 질문이 나오자 “앞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선 장하성 정책실장이 설명해달라”며 마이크를 넘기기도 했다.

즉문즉답 방식의 기자회견이 안착하려면 보완할 점도 있다. 공교롭게도 이번 기자회견 전날,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리고 아랍에미리트 특사가 다녀가고 한-일 ‘위안부’ 피해자 합의 후속대책 발표가 있었다.

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과 인사하고 있다(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과 인사하고 있다.(사진=청와대)

또 개헌과 지방선거라는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있다 보니, 정치 분야와 남북관계 등 외교안보 분야에 질문이 집중됐다. 반면, 정부의 부동산 정책 등 경제에 관한 질문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대통령의 손과 눈빛에 의존하는 지명 방식, 기자들이 반드시 물었어야할 질문들이 생략됐을 때 이를 보완할 방법 등이 청와대 관련 부서와 출입기자들의 숙제로 남은 것 같다.